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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흔드는 글쓰기 / 째깍째깍

알 수 없는 사용자 2017. 2. 11. 02:00

[1] 첫 번째 질문


“당신이 사랑한 소설은 무엇인가요?”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환상적인 소설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제가 사랑한(가장 재미있던 또는 기억에 남는)소설은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입니다. 이 책은 제가 앞서 작성했던 에세이에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세력, 가톨릭 세력 그리고 유대교 세력이 부딪히는 발칸반도는 예전부터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위에 사전형식으로 쓰인 소설이 '하자르 사전'입니다. 중세 동유럽에 실존했던 하자르 민족과 관련 있는 인물, 그 인물로부터 발생하는 신비한 사건들에 대해 나열한 소설입니다.

이게 제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첫 번째,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라는 말도 있듯이 종교가 접하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하자르 민족에 관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문헌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세 가지 종교 모두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도 있는가 하면 한 가지 종교에서만 다루고 있는 주제도 있습니다. 같은 주제가 다른 종교에 의해 재해석되는 건 흥미로웠습니다.

두 번째,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식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전형식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실제 사전처럼 항목들이 존재하고 이를 서술해 나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설은 목표(결말)를 향해 조금씩 진전해 나갑니다. 이 때문에 중간부터 읽어도 큰 문제 없이 결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큰 소설 안에 조그마한 이야기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2] 두 번째 질


“이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요?”


제가 비평할 책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입니다.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에서 작가는 다양한 예시를 들어주는데 독일사람이라서 그런지 독일 작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토마스 만이 많이 언급되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책 196페이지에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예시로 실려있습니다. (이 사실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 읽고 에세이를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크게 두 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유명하고 존경받는 작가 '아쉔바흐'와 베네치아에서 만나게 된 폴란드 소년 '타치오'입니다.


1. 등장인물 사이 관계, 서술

이 둘 사이는 일반적인 갈등의 국면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서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아예 없고, 늙은 남자 '아쉔바흐'가 어린 남자 '타치오'를 관음하고 스토킹하는 게 전부입니다. '타치오'의 생각은 언급되지 않고, 3인칭 시점으로 '아쉔바흐'가 느끼는 감정, 상태, 현실을 설명해 줄 뿐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지적 시점(공간적으로 위에서 상황을 관망하는 느낌)이지만, 마치 1인칭처럼 가까이서 타치오를 몰래 지켜보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줄곧 3인칭을 사용하지만 1인칭과 3인칭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느낌을 줌으로써 소설이 가지는 환상(fantasy)적이고 모호한 느낌을 더욱 부각해줍니다. 이 독일 소설은 늙은 남자가 어린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짝사랑)과 그 속에 피어나는 감정을 환상을 씌워서 설명하니 더럽고 몰상식하기보단 순수하고 이해 가능하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늙은 남자가 찌질해서 조금 한심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2. 배경

이 소설을 환상적이고 모호하다고 느끼게 한 요소가 중간중간 숨어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베네치아입니다. 물의 도시보다 더 중요한 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기후입니다. '아쉔바흐'가 도착한 베네치아는 예상과 다르게 흐리고 시로코라고 불리는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시로코는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넘어 이탈리아로 불어오는 더운 바람으로 심할 때는 모래 폭풍을 일으키기까지 합니다. 소설 중간중간 시로코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모래바람으로 뒤덮인 도시를 상상하게 되었고, 과장을 조금 보태어 '아라비안나이트'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질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하라사막을 베네치아보다 잘 알지 못합니다. (물론 정보의 상대성일 겁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시로코를 신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음악을 생각하고 있었던 저에겐 베네치아가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북아프리카는 미지와 신비의 색이 강한 곳입니다. 분명 배경은 베네치아지만 물보다 모래바람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된 이 도시는 이질적이고 신비하게 다가옵니다. 


[3] 보너스(지만 모두가 답할) 질문


“당신이 사랑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대학교 2학년 글쓰기 수업 과제로 빨리 끝내고 술 마시러 가기 위해 부랴부랴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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