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째깍째깍

설국 / 째깍째깍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4. 8. 22:15

[1]

단연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설국의 첫 문장은 어쩌면 설국 자체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책을 접하기 전까지 이 문장을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저 같은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럴 겁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여러분들과 나눠보고 싶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설국의 첫 문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거나 혹은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겠죠. 책의 첫 문장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과 그 이유 그리고 여러분에게 있어서 좋은 문장이란 어떤 문장인지도 함께 말해주세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설렘과 일본소설 특유의 우울한 감성을 기대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 두 문장을 읽었을 때,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30초 정도 멍을 때렸(?)습니다. 그러곤 다시 읽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는 능력이 부족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로소 두 번째 읽었을 때, 도서관이 아니라 눈의 나라에 도착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말이에요.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이 아닌 단 두 문장을 이용해 작가가 의도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파올로 코엘료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같이 중남미 작가들은 장황한 설명을 동반한 환상적인 배경묘사를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짧은 글로 상상에 빠져들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문장력이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첫 문장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거나 큰 의미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책을 읽다 보면 첫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문장이 가지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자 하는 성향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읽었던 책 중에 인상 깊었던 첫 문장이 있습니다.

사뮈엘 베케트는 부조리함을 담아낸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1969년엔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첫 문장부터 기괴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작가의 의도도 잘 모르겠습니다. 첫 문장은 이 소설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 줄지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을 읽으며 바게트를 먹는 것 같이 퍽퍽하고 목메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듯합니다. 아무래도 저는 생각에 잠길 수 있는 문장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중 몇 개만 가져와 봤습니다.


[2]

설국은 뛰어난 풍경의 묘사 그리고 순간을 느끼는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 묘사가 특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그러나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섬세한 묘사와는 다르게 주제가 막연하다는 점인물들의 성격이 일정한 형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 소설을 쉽게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설국이 지닌 형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소설을 읽는 동안 형식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나요단순히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책 전체의 감상에 대한 질문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간결함.'<설국>을 읽고 난 뒤 떠오른 단어입니다. 문장이 간결하고 명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배경이나 상황묘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이 책이 여러 단편이 모여서 만들어진 사실을 모르고 읽어서 그런지 읽는 동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만 제일 처음 계절을 건너뛸 때는 헷갈려서 다시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무리 없이 읽어나갔습니다. '형식'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나는 소설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밀로라드 파비치의 <하자르 사전>이라는 책입니다. 밀로라드 파비치라는 작가가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가는 20세기 초중반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현재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자르'는 7~10세기 무렵, 캅카스 지역과 흑해 북부에 실존했던 동유럽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10세기 이후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다 11세기 멸망해버렸습니다. 이 책은 하자르 제국에 관련된 인물들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사전적 소설'입니다. 이 책의 구성이 사전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세계 최초의 사전적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읽어도 되고, 색인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책 내용이해에 전혀 문제가 없는 소설입니다. 참으로 특이합니다.

다시 <설국>이야기로 돌아와서, 제가 일본 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는 같은 한자문화권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무대가 되는 지역은 니가타 현[新潟縣]의 유자와[湯澤]입니다. 니가타는 새로운 뻘이라는 뜻이고, 유자와는 끓인 못이라는 뜻입니다. 등장인물 시마무라[島村]는 섬마을, 요코는 꽃잎[葉子], 고마코[駒子]는 망아지를 뜻합니다. 이렇게 친숙한 표현은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3]

이렇듯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고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세계의 모든 언어를 공부하지 않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혹자는 번역에 대해 번역이란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이다단지 맛을 잃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구역질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까지 했으니 번역이 가지는 장단은 꽤나 뚜렷해 보이기도 합니다그렇다면 우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은 걸까요아니면 번역가가 편집재생산한 설국을 읽은 걸까요과연 이 두 가지를 같다고 말할 수 있을지같다면 어떻게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 주세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 했듯이, 같은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에 일본 소설에 흥미를 느낀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말은 번역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도서관에서 최신 번역판이 없어서 오래된 번역판을 빌려보면 읽기 불편합니다. 일본, 중국, 영미문학과 같이 수요가 많은 언어는 번역이 잘 돼서 나오지만, 이탈리아, 중남미, 동유럽과 같이 수요가 적은 언어는 번역이 부실합니다. 어떤 언어는 영어로 번역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예도 있습니다. 두 번 번역하면 그 뉘앙스를 살리기 참 어렵습니다. (한 번 번역할 때도 언어 특유의 뉘앙스를 살리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령 '배 위에서 배를 만졌다'는 영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언어유희의 맛이 살까요) 이 때문에 원서와 번역본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년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알베르 까뮈의 <이인>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그동안 번역되어 나오지 않던 책이 새로 나왔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에 덜컥 집어 읽지도 않고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이걸 어쩐다. 집에 오는 길에 펴본 책 첫 장 첫 마디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모른다.

였습니다. 아,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었습니다. 프랑스어로 L'Etranger는 영어의 Stranger입니다. 낯설고 이상한 사람을 뜻하는 이인[異人]과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뜻하는 이인[二人]이라는 제목이 어쩌면 직역한 '이방인'보다 더 중의적인 표현을 잘 드러내 주는 제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며 작가에게 감사를 느끼지만, 역자에게서도 많은 감사를 느낍니다. 다른 나라말로 쓰인 소설을 한국말에 맞게, 뉘앙스를 잘 살려서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고뇌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번역은 결국 언어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