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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 째깍째깍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11. 22. 18:35

[1] 첫 번째 질문


로자와 모모는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입니다로자는 유태인모모는 회교도이죠이 두 종교는 인류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갈등나아가 죽음을 만들어 냈습니다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의 다른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구사할 줄 압니다로자는 회교도의 언어로 모모에게 되묻기도 하고 모모는 유태인들의 기도문을 함께 외우기도 합니다그렇다면 작가는 왜 이 두 사람의 종교를 다르게 설정했을까요회교도와 유태인을 한 집에 살게 하면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요?


어떤 사람은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다수가 존재합니다. 앞서 알랭 드 보통이 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를 읽으며 우리가 종교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언급했지만, 저는 종교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습니다.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떻게 뿌리내리게 되었을까요? 저는 인간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약해질 때마다 기도하고 기댈 때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종교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자와 모모의 삶은 하루하루 고통의 연속입니다. 일정하지 않은 수입, 시간이 지날수록 달리는 체력(로자), 어린 나이에 아이들을 대신 돌봐야 하는 일(모모)을 감내해가야 하는데 종교가 눈에 들어올까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온 로자,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모모. 신이 있다면 이렇게 모진 운명을 가져다주었을까요? 이들이 진정 신이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종교에 의지하기보다 현실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게 될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의 크기는 더욱 커질 것이고 종교의 의미는 흐려질 겁니다.

모모의 아빠로 추측되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 이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슬람교를 믿는 모모의 아빠는 아들이 유대교를 믿으며 자랐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합니다. 아들보다 아들의 종교가 더 중요한 거로 보입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전 모모 아빠의 직업은 포주(뚜쟁이)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아온 그는 종교를 믿고 생각할만한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모모 아빠의 모습은 모모와 로자에겐 우습게 보였을 듯합니다. 그깟 종교가 뭐라고 심장이 좋지도 않은데 흥분을 하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큰 줄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종교는 모순되게도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아랍인 모모와 유대인 로자가 같이 살아가는 허름한 아파트 7층은 책을 읽는 내내 이스라엘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현실과 다르게 소설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여생을 살아간 작가는 종교를 넘어선 평화를 바랐던 걸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3] 세 번째 질


현재의 나이대로 살고 있는 당신이 알고보니 4살이나 더 많은 나이의 사람이었다면 각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금보다 네 살이 더 많으면 30대....... 참담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기억하지 못하고 4~5살쯤부터 기억을 하므로 4년을 잃어버린 또는 빼앗겼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을듯합니다. 또한, 31년 동안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살아왔다는 게 치욕스럽고 죄송스럽기 때문에 조급함도 느낄듯합니다. 빨리 독립해서 부모님이 룰루랄라 여행 다니시는 게 저의 조그마한 희망 사항입니다.

31살.. 취업도 쉽지 않은 나이입니다. 나름대로 취업 잘 된다는 공대를 나왔는데 아직 못 했다니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에 비해 취업준비가 너무나도 미약하므로 대기업 취직은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깐 씁쓸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깐 아닙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4살이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삶에서 이득을 취한 듯합니다. 속으로 좋아하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4살이나 많아진다고 하면 혼란이 생기고 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도 거리가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결혼한다면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 사실대로 말할 생각입니다. 갑자기 내일 4살이 많아진다고 해도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제 삶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사회는 아직도 유독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연장자에게 말을 높여 쓰기를 강요하는 문화는 유대감을 쌓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수북도 반말을 ㅎㅎ 사용하고 있는듯합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존경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나이가 적은 사람이 나보다 훌륭하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