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의 결, 속도
「마음사전」
이해(p.182) + 솔직함과 정직함(p.200-201)
- 새해에 들어 통 잠들기가 힘들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던 어느 밤도 그랬다. 머리만 붙여도 잠을 잘 자던 내가 새벽까지 잠을 뒤척이다 결국 몸을 일으켜 책을 읽었던 날. 그 날 나는 밤을 꼬박 새워 이 책을 읽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구절마다 포스트잇을 붙이며 적극적으로 독서를 했지만, 해가 뜨니 내가 그저 활자를 들여다보고만 있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냥 누군가가 ‘이해’와 ‘오해’ 같은 헷갈리는 말들을 정의해주는 것을 읽고 싶었던 걸까? 시인이 ‘이해는 가장 잘한 오해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 끄덕 하고, 어느 술자리에 가서 ‘야~ 이해는 가장 잘한 오해래~ 김소연 시인이 어떤 책에서 그러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밤을 새워 책을 읽은 그 시간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졌다. 나는 정말 내 마음의 결을, 마음의 속도를 들여다보며 책을 읽었을까. 그것이 없는 책읽기는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답 없는 자문자답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 당신은 이 책을 읽을 때 당신 마음의 결을 따라 읽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마음의 결을 따라 읽는다는 게 뭔 소리야 싶다면 어떤 마음의 속도로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는지 적어주세요. 솔직해도 좋고 정직해도 좋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소개를 듣는 것은 낯설면서도 설렘과 시작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겨준다. 2015년은 내가 살면서 그동안 느낀 감정들과는 다르게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들이 설상가상으로 덮쳐왔고 무게감 있는 힘든 일들을 통해 고민이 없는 것이 고민이었던 내가 생각도 많아지고 지쳐 쓰러지는 나를 다시 붙잡으며 나를 옹호(p118)하려 애썼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생각과 행동들. 바뀌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절로 시행되는 행동들이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려한다.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이 좋았고 책 자체가 좋았던 나는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 치여 읽지 못했던 책을 종강만 하면 다 읽겠다면서 혼잣말로 시험기간에 째려보았던 책들을 다시 찾았다. 그러던 중 책을 정성스럽게 읽고 에세이를 쓰는 조를 함께 하면 어떠냐고 물어보는 상아언니의 러브콜. 나는 당연히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상아언니이기 때문에 바로 예스를 외쳤다. 그렇게 해서 읽기 시작한 마음 사전은 평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비슷한 말들을 정의했다 하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따뜻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의 결.’ 예쁘다하며 쓰다듬어 정성스레 머리를 만져주는 것처럼, 길이 나있는 것처럼, 마음도 다독여주며 결을 따라 쓰다듬어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심정이 복잡하고 불안한 사람은 마음의 결이 정돈되어 있지 않고 머리카락이 돌풍을 만난 듯 헝클어져 있지 않을까. 비슷한 말들이지만 뜻이 정말 반대인 단어들과 정의들의 차이가 헷갈릴 때면 미미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읽었다. 생각을 회상하면서 시인이 정의한 단어들의 뜻을 생각하며 상황 속으로 돌아갔다. 책의 뒷부분 즈음에 나오는 사랑에 관한 말들은 정말 천천히. 그렇구나. 그런거였구나. 이해도 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글로 이렇게 잘 정리한 책을 보며 그 페이지만큼은 마음속에 넣어 간직하길 소망했다. 또, 이 책에서 나온 문장 부분을 엄마에게, 10대인 동생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읽었다.
[2] 내려놓기
「마음사전」
감정<기분<느낌(p.43-47) + 유대감들(p.147-160)
-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저는 작년 일주일에 한 번씩 세 달, 그니까 한 10회 정도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라는 이름의 집단 심리 상담을 받았습니다. 심리 상담은 참 좋았습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한 시간 반 동안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가슴 답답한 걸 털어놓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의 진행이 좋았습니다. 상담의 처음은 ‘내려놓기’로 시작됩니다. 선생님이 ‘내려놓기부터 시작할까요?’라고 말씀하시면 모두가 눈치를 보다가 한 명씩, ‘내려놓기’를 시작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금 나의 ‘감정’을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하면 됩니다. 모두가 돌아가며 단어를 뱉어내면 다시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집니다. 선생님은 상담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가 서로서로 질문하길 원하셨으므로 먼저 용기 내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그 침묵은 이어집니다. 긴 침묵 후에 누군가가 입을 떼면 우리는 ‘내가 왜 이 감정을 느끼는지.’가 아니라 ‘당신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가.’를 묻고 듣습니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집니다. 대화 중간에서도 이 진행 방식은 이어집니다. A가 본인의 이야기를 어쩌고저쩌고 늘어놓으면 선생님은 A에게 바로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B에게 묻죠. ‘A씨의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들려요?’ 이런 방식은 저에게 조금 낯설었습니다. 내 상태가 이러하다고 말하면 무언가 답이나 아니면 그 비슷한 것이라도 주실 줄 알았던 저였기에 더욱 어색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의 거울의 비추어보며 꺼내놓았던 감정과 느낌과 기분들이 결국 진짜 내 모습을 여러 개 마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감정, 기분, 느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함께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함께 모여 앉아서는 아니지만 글로써 우리의 감정을 표현해보고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보면서 그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해 봅시다. ‘감정’,‘기분’,‘느낌’ 같은걸 구분하는 건 김소연 시인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몰라도, 우리 지금 내 ‘감정’이 무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6년 한 해를 또 힘겹게 살아가야 할 텐데, 지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무엇을 하겠어요! 라고 다그치면 안 되겠죠... 하하 부담 갖지 말고 지금 당신의 ‘감정’을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해보세요. 형용사만 달면 됩니다. 하나, 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다른 멤버의 글을 읽으세요. 그리고 그의 글에 댓글을 하나 이상 다세요. 왜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느냐 물어도 되고 , 나는 이런 기분일 때 이런 감정이라 했는데 비슷한 것이냐 물어도 되고.. 당신이 느낀 그 감정과 이 감정은 같다고 생각하느냐 물어도 되고... 자유입니다. 그 물음과 답변 속에서 여러분 서로가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합니다. 기쁠지 슬플지는 해봐야 알겠군요.
지금 나의 감정은 배불러서 행복한 1차원적인 감정이므로 수북멤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서 내가 요즘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내가 선택한 형용사는 냉철함이다.
[3] 내 언어로 이야기하기
내 글에 '나'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게 된 것은 1992년, 내가 사십대로 들어설 무렵이다. 그전에는 '나'라는 말은 못쓰고 가끔 '필자'라는 말을 쓰기는 했다. 영어 글을 보면 수필이나 칼럼 뿐 아니라 학술저술에서조차 수많은 'I'(나)가 나오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고 할까 또는 거부감이 있었다고 할까. 그런데 9209호에 건축 잡지 공간에서 "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40"라는 특집을 꾸미면서 10개의 설문에 답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쓸까 말까 망설이다 컴퓨터 앞에서 단번에 답변을 내려썼다. '나'라는 주어 없이는 답변이 될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쓰고 나서 그대로 보내 버렸다. 이 사건은 나에게 새로운 계기였다. 글에 '나'라는 단어를 쓰게 됨으로써 나를 찾는 또 다른 방식을 터득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나'라는 주어가 들어간 글을 한 번 써보라고.
「매일 매일 자라기」 김진애,서울포럼,p.167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현실을 반성하지 못하고 언제나 남의 언어로, 남의 세계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정신의 역사가 바로 한국의 정신사이다. 정치적 예속이란 이런 정신적 자기상실의 외화인 것이다. 그런즉 철학이 할 일은 정신이 예속의 상태를 벗어나 자기를 찾고 주체성을 회복하도록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자기의 언어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을 때 참된 의미에서 자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언제 우리는 자기가 되는가' 라는 물음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제출된 물음이다.
「서로 주체성의 이념」 김상봉,도서출판 길,p.29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 받을 테니까.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 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연금술사」,파울로코엘료,문학동네
만약 마음이라는 것이 나아가는 것이 아닌,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라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고. 파랑새를 보고, 다시 잊고. 실수하고, 반성하고, 포기하고, 노력하고, 무뎌지고, 다시 아프고, 트램펄린 위에서 점프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올라갔다 떨어지고, 아니 떨어진 덕에 다시 올라가고.
그러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만나고, 다시 끌려 내려가고, 또 다시 점프하는 세계라면, 그렇다면 진짜 아름다움은 위에서 잠시 본 높은 풍경이 아닌 그 움직임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후일담을 듣고 싶었다.
프로필에 좋아하는 것을 적어둔 사람을 많이 본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나열하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부질없다고 느낀다. 어차피 변할 것을. 차라리 내 침대 커버의 색을 써두는 것이 진실에 가까우리라.(현재 파랑이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없다. 무엇을 좋아하고 말고조차 어찌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추억조차 마음대로 떠올릴 수 없다. 어떤 선반은 열리지 않고 어떤 선반은 너무 열려 안에 있던 것들이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나는 이제 기억을 믿지 않는다.
이런 흐름이 있구나. 점점 지하로만 내려가는 계단. 부정적으로 바뀌는 세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 안 되는 것. 무기력한 것.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것이 아닌. 계속 잃기만 하는 세계.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냥 하면 되잖아’라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이봄,p.98,105
- 이제 더 이상 저는 주절거리지 않으려구요. 여기부터 여러분들. ‘나’의 언어로 이야기해야합니다. 위의 글을 읽고 떠오르는 말들을 적으세요. 분량제한을 조금만 할게요. 공백을 포함해 300자에서 600자 사이로 적어주세요.
내 언어로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나에 대해,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윗글을 읽고 나는 누구인가? 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신기하면서 존경스러웠다. 20살 겨울이었던가. 나는 아직 내가 누군지에 대해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며 그때부터 나를 찾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를 정의내리는 것은 나 자신을 단정 지으면서 한계를 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볍게 말하는 것은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만큼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뜻도 되는 것 같다. 지금도, 앞으로도 어쩌면 죽기 전까지 ‘나’를 찾고 되돌아보는 일을 여러 경험과 시간 속에 계속 하겠지만 내 언어라 함은 내가 하고 싶은 말, 나의 주장을 내 경험과 표현으로 당당하게 흔들림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닐까.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두렵고 회피 하는 마음도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알고 있음에도 흔들린다. 그래서 또다시 노력한다. (595자)
- 우리는 <마음사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김소연 시인이 했듯 내 입에서 나온 마음 관련 낱말 하나하나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며 말해봅시다.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틈’ 페이지에 나온 여러 마음 관련 낱말 중 하나여도 좋고, ‘나’의 마음에서 오롯이 건져 올린 낱말이어도 좋습니다. 최소 다섯 개의 낱말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아주세요. 금방 변해버릴지도 모르는 나지만, 2016년 1월, 나의 마음을 사전으로 남겨두는 작업은 결코 헛된 일은 아닐 거라 믿어요. 그럼 다들 파이팅.
1) 단정과 한계; 단정은 틀이나 상자 속에 가두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고 한계는 부단히 노력하지만 벽에 부딪히는 것과 같이 막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정에 있어서는 한계에 있는 노력이 없는 것 같다.
2) 당당한: 부끄럼이 없고 힘차며 떳떳한 태도.
3) 냉철한: 감정을 배제한 상태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4) 인정하다: 내 안으로 품고 받아들이는 것. 이 때 거짓으로 인정한다면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5) 흔들리다: 굳건했던 생각이 수없이 바뀌어 혼란스러운 상태.
끝.
'글 > Yenn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국 (0) | 2016.04.10 |
---|---|
진격의 대학교/wendly (0) | 2016.03.27 |
몸의 일기/wendly (0) | 2016.03.18 |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 (0) | 2016.02.28 |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김영란(wendly) (0) | 2016.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