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의 생각과 글들을 통해 각자에게 기억될 설국의 이해도와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지길 기대합니다.
[1]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중에서-
단연 아름다운 문장입니다. 설국의 첫 문장은 어쩌면 설국 자체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책을 접하기 전까지 이 문장을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저 같은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럴 겁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여러분들과 나눠보고 싶은 얘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설국의 첫 문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거나 혹은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겠죠. 책의 첫 문장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과 그 이유 그리고 여러분에게 있어서 좋은 문장이란 어떤 문장인지도 함께 말해주세요.
사실 설국이라는 책도, 이 책의 첫 문장도 나에게는 처음이다. 하지만 시작은 좋았고 나에게는 몰입감을 주는 문장이었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함으로써, 나는 국경의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기차를 타고 있고 밤이지만 세상은 온통 하얗고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마을을 지나 신호소에 멈춰 밖을 바라보는 나를 상상했다. 그렇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그 기차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이 그렇게 유명한 문장이라니. 왜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겐 그저 지하철을 기다리며 읽는 안전문에 쓰여진 시와 비슷한 느낌이고 책의 첫 문장으로써 몰입감을 주는데 그친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유명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는 건데 내가 감수성이 부족한건지, 그렇게 큰 감명은 없었다.
나에게 있어 좋은 문장은 미술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이 함축적이고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어서 개인마다 다르게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문장인 것 같다.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개개인이 가치관, 경험 등을 토대로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겐 매우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나누며 같이 얘기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2]
설국은 뛰어난 풍경의 묘사 그리고 순간을 느끼는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 묘사가 특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섬세한 묘사와는 다르게 주제가 막연하다는 점, 인물들의 성격이 일정한 형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 소설을 쉽게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어떤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가는 순수 지속이다. 따라서 그것은 변화의 기록이고 순간의 집성(集成)이다 고마코라는 여성도 요코라는 여성도 하나의 전체상을 포착하려 할지 모르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정념은 전체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수 지속이 마지막에 가서는 스스로 어떤 종합에 다다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 <미사미 유키오>
여러분은 설국이 지닌 형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소설을 읽는 동안 형식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나요? 단순히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책 전체의 감상에 대한 질문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맞다. 나에겐 아주 곤혹스러웠다.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아 글의 흐름을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갑작스런 장면 전환과 시간 변화 등은 책을 읽으면서 집중력을 떨어뜨렸으며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채우며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힘도 들면서 읽던 와중에 내게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 민음사 책이 어려운걸까. 몇 달 전에 읽었던 데미안도 읽기 힘들었는데 출판사를 잘못 선택한 것인가 고민했다. ‘⌜⌟’ 이런 식의 대화표현도 불편했다. 대화를 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시선은 어디를 보며 하는 지 등 잘 이해가 안 되고 나랑 책과의 호흡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작가와 맞춰 읽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창 밑으로 시선을 던지자, …’, ‘마을은 추위의 밑바닥으로 고요히 가라앉았다.’, ‘달은 마치 푸른얼음 속 칼날처럼 투명하게 빛났다.’처럼 비유적 표현과 시각적 심상이 쓰인 인상 깊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고다쓰, 게이샤 말고도 많은 일본어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채 단어를 적어놓은 것은 당연 설국이라는 책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할 수도 있지만 일본의 문화도 알아야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큰 것 같고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바보같은 소리”, “이상한 사람”과 같은 말들이 반복되면서 이렇게 밖에 번역을 할 수 없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어색하게만 느껴져 책을 읽는데 너무 힘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출판사의 번역 책을 읽고 싶다. 발제문에 쓰여있는 것처럼 주제도 막연하고 등장인물 성격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게 이 책이 어려웠던 것 같다. 표현력이 좋아 노벨상을 받은 책이 독자에게 시험과 고난을 줄 수도 있는데도 그 책은 좋은 책일까? 이 책의 주인공은 1968년 노벨 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정서적으로는 불륜이라고 칭할 수 있는 주인공은 나의 정서와 아주 맞지 않는다. 일본은 196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개방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3]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훌륭한 작품일수록 번역이 힘들다. 그런 까닭에 『설국』은 참으로 번역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소설이다. 번역 작업에는 불가피하게 번역자 개인의 작품이해와 해석이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p.158 중에서
이렇듯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고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세계의 모든 언어를 공부하지 않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혹자는 번역에 대해 ‘번역이란,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이다. 단지 맛을 잃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구역질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까지 했으니 번역이 가지는 장단은 꽤나 뚜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은 걸까요? 아니면 번역가가 편집, 재생산한 『설국』을 읽은 걸까요? 과연 이 두 가지를 같다고 말할 수 있을지, 같다면 어떻게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 주세요.
번역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책은 독자도 곤혹스럽게 만든다. 내가 읽은 설국은 번역가가 편집, 재생산한 설국을 읽은 듯하다. 작가가 쓴 책과 다른 나라의 번역가가 쓴 책은 결코 100% 일치할 수도, 같다고 말하기도 힘든 것 같다. 한 작가가 글을 쓸 때 작가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 그 나라의 문화가 작품에 베여있고 깃들어있는 것은 당연한데 그렇다면 번역가는 작가에 대해 이해하고 작가를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여 일체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어들을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일본어 그대로 놔둔 것들이 많은데 그 까닭은 작가의 실력부족인지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어색해서인지 모르겠다. 책 속 대화를 들여다봤을 때 어색하고 읽는 도중 정말로 작가가 이런 의도로 말을 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았다.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감정 등을 상세히 묘사하는데 이 민음사와 번역가는 그것을 방해했고 독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상한 사람.”, “바보 같은 소리.”와 같은 말들은 현 시대에 잘 쓰이지 않는 어투이다. 번역가의 이름을 보고 유추했을 때 번역가의 개입이 들어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번역은 나라,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가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도 시대에 맞춰서 재번역을 할 필요성이 있다.
'글 > Yenn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wendly) (0) | 2016.05.21 |
---|---|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알랭드보통)/wendly (0) | 2016.05.07 |
진격의 대학교/wendly (0) | 2016.03.27 |
몸의 일기/wendly (0) | 2016.03.18 |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 (0) | 201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