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bokgil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복길 2016. 4. 10. 02:43

[1] 여러분은 설국의 첫 문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거나 혹은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도 있겠죠. 책의 첫 문장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과 그 이유 그리고 여러분에게 있어서 좋은 문장이란 어떤 문장인지도 함께 말해주세요.

 

 

 아마 내가 이 책을 발제도서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우연히 서점에서 설국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평생 설국이라는 책의 첫 문장은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나는 설국이라는 책에 대한 기초지식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설국의 첫 문장을 지나 책의 3분의 1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렇게 기막히다던 첫 문장은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작가가 궁금해서, 책 자체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인터넷 검색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설국의 첫 문장에 쏟아진 찬사와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유명한 문장이었다니.’, ‘?’ 그 사실을 알고 난 후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문장이라면 그게 나에게만 적용되지 않았을 리 없다. 나만 비켜지나 갔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문장이 결코 많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 만큼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설국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해서 sns에 설국을 치고 여러 사람들의 감상을 찾아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국의 첫 문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름답다고, 최고라고 했다. ?

 옮긴이가 언급했던 일본어 특유의 운율을 한국어판 설국에서는 맛볼 수도 없는데 왜 그 문장이 좋다고 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그저 저명한 문학평론가들이 그 문장을 극찬하니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이란 책으로 노벨상을 받았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문장을 최고의 문장이라고 하니까. 그저 전문가들의 의견과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려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첫 문장에 대한 사람들의 극찬과 열광이 나는 못마땅했다.

 나는 설국의 첫 문장(한국어로 철저히 번역된)이 결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비록 학습되고 주입된 아름다움이라고 할지라도 그 문장이 지닌 문학적 가치와 힘은 분명 대단하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가 인정하고 역사가 인정한 문장이기에 그 부분에 대한 이견은 없다.

 

 

 

[2] 여러분은 설국이 지닌 형식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소설을 읽는 동안 형식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나요? 단순히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책 전체의 감상에 대한 질문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확실히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며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형식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설국이라는 소설의 서사는 단순함을 넘어서 아주 희미하다. 누군가에게는 서사랄게 아예 없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분명 소설은 곧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설국은 마치 소설같지 않게 쓰여진 소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설국은 참 마음에 드는 소설이다. 설국은 제목에서부터 이야기는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국이라는 제목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는 기대보다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더 갖게 만드는 제목이다. 그리고 실제로 설국은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터널을 통과한 뒤 펼쳐진 설국의 모습 그리고 차창에 비친 여인의 얼굴을 보여주고, 사내의 무릎 위에 풀썩 쓰러진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다른 여인의 얼굴 위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나 또한 설국이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언제쯤 흥미로운 사건이 벌어질까 하고 한줄, 한줄 시선을 거두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혹시 이야기가 아니라 형식 자체가 이 소설이 지닌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뒤로 조금은 자유로워진 기분으로 소설을 즐길 수 있게 됐다.

 

 

 

[3] 그렇다면 우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은 걸까요? 아니면 번역가가 편집, 재생산한 설국을 읽은 걸까요? 과연 이 두 가지를 같다고 말할 수 있을지, 같다면 어떻게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 주세요.

 

 옮긴이는 이미 번역하는 사람의 작품이해와 해석이 소설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고 이야기한바 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과 번역된 설국은 분명 다르다. 한 문장을 완성시키기 위해 몇 시간, 며칠을 고민했을 작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을 작가의 문장과 그 문장을 번역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또 그에 적합한 조사를 써서 옮겨낸 문장은 결코 같지 않다.

 많이 아쉽다. 번역 없이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직접 쓰고 고민했던 문장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지만 번역이 지닌 한계와 아쉬움을 탓하기 전에 왠지 내가 외국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많이 아쉬워해야 할 것 같다. 슬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특히 섬세한 묘사가 책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설국같은 소설은 번역의 한계가 더욱 더 드러날 수밖에 없다. 번역을 통해 아주 작고 고운 부분까지 옮겨내기란 불가능하겠지만 번역을 통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글에 존재하는 주제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기에 번역이 지닌 한계만큼 번역의 힘도 분명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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