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우리는 총 4개의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논문이 아닌) 문학 작품을 읽은 만큼, 저는 '형식'이나 '제한' 같은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주 아주 자유롭게, 본인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적어주세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1] 우리는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읽었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아마도 많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느낌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 곳에 모두 기록해둡시다. 간단하게 말해, 독후감을 써보는 것이지요. 정해진 형식은 없습니다. 책의 줄거리나 주인공에 대해 쓸 수도 있고, 책의 형식에 대해 쓸 수도 있으며, 혹은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에 대해 쓸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매우 다양한 것들에 대해 느끼고 생각했다면, 그 모두에 대해 쓰셔도 좋습니다. 본인이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담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꽤나 힘든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선물 받았을 때, 그리고 이 책이 발제도서로 선정되었을 때는 전혀 예측 하지 못했던 고단함이 있었다. 어쩌면 책이 힘든 게 아니라 개강, 상상 이상의 통학거리와 통학시간 그리고 어느새 운동과 멀어져 피로에 취약해진 내 육체 때문이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해본 형식 때문이었는지 책장은 비교적 술술 잘 넘어갔다. 잔인하리만치 많은 분량이었지만 그 점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책은 스스로를 장편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그것이 완벽한 사실임에도) 책에 몰입하다보면 정말 주인공의 일기를 내가 훔쳐 읽는 듯한, 일기장 혹은 에세이를 읽는 듯한 진지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책이 중반을 향해 갈수록 그리고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확실히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인물의 등장, 그리고 그들과의 에피소드. 물론 한 사람의 일생을 담은 일기이다보니 당연히 그 사이에 많은 관계자들이 끼어들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꽤나 잦은 빈도로 아프고 다치는 일기장의 주인, 수개월의 공백이 너무나도 잦은 일기의 주기까지. 하지만 그 공백이 아니었다면 나는 책을 다 읽지도 못했겠지.
이 책에서 아주 흥미로웠고 또 미묘한 웃음을 자아냈던 대목은 바로 남자의 욕구, 남자라는 동물이 가진 원초적 본능을 아주 익살스럽고 때로는 신성하게 잘 표현해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남자라고는 나 하나 밖에 없는 수북 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이 남자의 성적 본능 그리고 본능의 순간에 느껴지는 몸의 반응과 신체적 과정을 한 글자씩 텍스트로 읽어냈을 걸 생각하니 마치 내가 남자를 대표하는 남자인 것처럼 약간은 민망한 느낌도 들었다. 실제 남자인 내가 읽었을 때 그러한 대목들은 꽤나 정확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것과 관련해서 아쉬운 점은 역시(책에서 일기의 주인공도 언급했지만) 여자의 몸의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 점이고 그것을 만족시켜줄만한 책이 아마? 없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남자의 몸보다 여자의 몸이 훨씬 더 복잡하고 신기하고 재미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여자의 몸은 신성함 그 자체다.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 사람의 몸에서 사람을 키워내 태어나게 하는 그 과정을 모두 가능하게 만드는 여자에 대한 몸의 일기를 언젠가는 누군가가 꼭 써주길 바란다.
몸의 일기, 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면일기는 절대 이 공간에 담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몸에 대한 일기를 적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해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난 왜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만 같을까. 일기를 보면서 그 사람의 몸 구석구석이 그려지고 떠오르지 않고 왜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보이는 건지. 일기의 주인공은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했지만 결국 주인공이 보았던 것은 매순간마다 정신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몸의 반응을 본건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의 몸을 보았지만 그건 결국 그 사람의 속을 본 게 아니었는지.
2] 위에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직접 자신의 몸에 대한 일기를 써보면 어떨까요? 이 책에는 몸에 관련된 아주 많은 키워드들이 담겨 있습니다. 목소리, 구토, 자위행위, 손금, 똥, 눈물, 섹스, 노안, 안경, 병, 등등. 이 책에 나온 키워드도 좋고, 새로운 키워드도 좋습니다. 한 개의 키워드를 정하고 그에 대한 일기를 하나 써주세요. 일기를 작성한 날짜도 명시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명심하세요. 내면 일기가 아닙니다!
2016년 3월 8일
이제는 술을 완전히 먹지 말아야겠다. 술이 몸에 들어갔을 때 1분도 지나지 않아 얼굴이 달아오르고 결국 몸 전체가 붉게 변하는 내 모습이 더 이상은 보기가 싫다. 술이 들어가는 만큼 얼굴이 빵빵해지는 그 느낌도 싫다. 술이 몸 전체를 돌고 있는 게 아니라 얼굴로만 모여들어서 얇은 물줄기의 형태로 모공을 뚫고 흘러나올 것만 같다. 술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건 굳이 술을 마셔보지 않고도 예전에 짐작 가능한 것이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모두 술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니까 자식인 나는 술을 마셔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태초의 인간이 우리 엄마와 아빠였다면 인류에게 술 같은 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회식자리에서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직장인과 사회인들은 아마 존재할 수 없지 않았을까. 어쨌든 앞으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으리. 물론 불가피하게 홀짝 거릴 일이 생기겠지만 이제는 아예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사람인 채로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또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는 조금 즐겨야지.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으면 조금 더 행복했을까? 만약에 평생 술을 마시지 않고 살다가 간경화에 걸리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마치 비흡연자가 폐암에 걸린 것 마냥. 그럴 바엔 차라리 술이라도 잔뜩 마시고 간경화에 걸리면 덜 억울하려나. 그러기엔 나한테는 술 자체가 너무 괴롭다.
[3] 독후감도 쓰고, 자신의 몸에 대한 일기도 써보았습니다. 몸의 일기, 직접 써보니 어떠셨나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내면에 대한 일기가 아닌 몸에 대한 일기도 쓸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면 일기와 몸의 일기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내면 일기와 몸의 일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우리가 [1]에서 책에 대해 자유롭게 기술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일기라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기술해봅시다.
나에게 일기라는건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매일 쓰는 게 불가능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써온 일기를 다시 들춰보면 그 때는 매일매일 무슨 일들이 벌어졌다. 외식을 했다거나, 별거 아니지만 무언가를 깨달았다거나,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선물 받았다거나 어디에 놀러 갔다거나 등등. 이러한 걸출한 사건들이 없이는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누구도 일기를 굳이 그렇게 쓸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주지 않았다. 엄마도, 선생님도 일기를 써야한다고만 했지 어떤 다양한 방식으로 일기를 적을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시간이 흘러 군대에 들어갔다. 정말 가기 싫었기에 그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 생각을 얘기하면 안 됐었다. 궁금한 것을 함부로 질문할 수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있거나 그 사람들이 시키는 걸 하거나 혹은 그 사람들이 원할 것 같은 일을 먼저 해놓는 일이 내가 하는 전부였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기는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 잠에 들 때까지 봐야하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욕하고 비난하는 대나무 숲이었고(실제로 일기장 색깔도 초록색이었음) 당장이라도 그 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나를 어르고 달래는 설득의 장이었다. 나의 감정과 기분을 끝까지 추격해서 그 일기장에 적어냈다. 난생 처음 일기라는 것이 사건사고 없이도 적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지를 조금씩 파악해 갔다. 상황에 따라 내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는지 일기장을 통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형식도 점점 다양해졌다. 어떤 날은 에세이처럼 일기를 썼고 어떤 날에는 시를 적기도 했고 다른 날에는 욕으로 꽉 차기도 했고 저런 날에는 쓰다가 만 것도 있었다. 일기는 그것이 몸이건 내면이건 중요하지 않다. 그 날, 혹은 그 순간의 나를 적는 것이 아닐지. 누군가에게 보여져야 하는 글에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시도들을 통해서 나를 적어내는 것. 일기는 나에게 나를 내보이는 것이 아닐지.
[4] 마지막으로, 몸, 마음, 생각, 환경, 행동의 관계에 대한 자신만의 글을 작성해주세요. 이 5가지 키워드 간의 관계에 대해 적어주셔도 좋고, 특정한 키워드 몇 개를 선정하여 그 관계를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또는 이 외의 다른 키워드와 갖는 관계를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다만, '몸'이라는 키워드는 꼭 들어가야합니다 (우리는 '몸의 일기'를 읽었으니까요). 글의 종류는 어떤 것이든 상관 없습니다.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시가 될 수도 있고, 에세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분량 제한은 없습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너무 기쁠 때? 너무 슬플 때? 행복할 때? 그럴 땐 오히려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지 않을까. 너무 좋고 슬프고 행복하니까 어디선가 둥둥 떠 있는 느낌이지 않을까.
과거 언제부턴가 생각을 많이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을 많이 하고 스스에게 계속 질문하고 따지고 재고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 안했다. 오히려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니까. 나처럼 다양한 것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그런 생각들 속에서 내가 만족하고 살던 중 문득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분명 머리 속에서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사는데 왜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지. 나는 분명 여기 존재하는데 왜 그걸 느낄 수가 없지.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살아있다는 건 근육이 움직이고, 숨을 쉬고, 심장에서 피가 뿜어 나가는 걸 느끼는 것도 포함한다는 것. 20kg의 짐을 지고 30km를 장장 8시간 동안 걸을 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살아있다는 게 죽을 만큼 싫을 정도로 내가 살아있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생각보다 몸을 중요한 지위에 올려 놓아야만 한다. 정신의 피로보다 몸의 피로가 존재의 인식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다.
'글 > bokgi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0) | 2016.04.10 |
---|---|
진격의 대학교/bokiree (0) | 2016.03.27 |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bokiree) (0) | 2016.02.28 |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김영란(bokiree) (1) | 2016.02.13 |
마음사전 (김소연, 2008) (3) | 201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