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bokgil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bokiree)

복길 2016. 2. 28. 05:08

[1]

 돈이 주인이 돼버린 사회에서 개인이 가져야할 양식은, 원래 우리들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는 것이다. 돈을 삶의 수단에서 목적으로, 목적에서 개인을 지배하는 주인으로 섬기는 순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의 원인과 결과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돈으로 점철된다. 손과 발의 끝 중에 끝까지 뻗어있는 말초신경처럼 생각의 아주 미세하고 섬세한 부분까지, 돈은 가차없이 영향력을 행사해버린다. 그렇기에 우리는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개인들은 쉽게 의미 없는 일에 빠질 수 있다. 그 일은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건강하고 성숙시킬 수 있다. 그러나 돈의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가 다 그런 얘기다보니, 돈 한푼 되지 않는 의미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외롭고 쓸쓸해진다. 그리고 자신을 의미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사회가 가져야할 양식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이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들이 이 의미 없는 일을 꾸준히 그리고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 줘야만 한다. 그 사람들에게서 한 순간이라도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양식이다.

 

 

[2]

 물론 쉽지 않다. 우리 사회는 다른 어떤 사회보다 타이틀을 중시하는 사회다. 직업이라는 타이틀, 직위라는 타이틀, 출신이라는 타이틀 등등. 이것은 가정 내에서도 유효하다. 가족 안에서 역할이라는 타이틀을 부여받고 산다. 물론 이 타이틀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신 앞에 놓인 상황과 문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할이 강조될수록 역할을 담당한 개인의 개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그 역할로만 살아가게 된다.

  할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가 아니었고,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는 얘기를 접할 때 누군가는 마음이 찡하고 울컥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안쓰러워할 문제도 아니고 감동받을만한 사실도 아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당연지사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개개인의 섹스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이 얘기에 감동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부모, 자녀라는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기 이전에 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면 된다. 자신과 똑같이 충동과 본능을 가진 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가족과 섹스는 양립을 넘어서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분리될 수 있다고 믿는다.

 

 

[3]

 제가 생각하는 성숙한 사회는 특권을 내려놓고 모두가 시민의 자리로 돌아오는 사회다. 특권이야 말로 민주주의 사회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권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시민들이 있을 뿐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시민이 특권을 내려놓으면 사회는 성숙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제도가 힘을 발휘할 수는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성향이 다양해지고 사회의 안팎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제도화하여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때로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돈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탈특권의식이 절실할 때가 있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자연스럽게 이 과정이 이루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울 때,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개인의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러 사람의 성공보다 한 사회의 성공이 훨씬 좋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4]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들은 도덕적인 대위기 기간에 중립을 유지한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라고 말했던 단테의 생각에 동의한다. 여기서 도덕적 대위기는 정치적 위기나 사회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사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모습을 끈기 있게 바라본다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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