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에서 당신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공부를 하면서 무슨 생각이 듭니까? 학점을 잘 받는 것과 공부를 잘 하는 것의 상관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대학에서 주로 평가를 위한 공부를 해왔다. 4학년인 지금도 나는 평가를 위해 공부를 한다. 점수에 포함되는 여러 개의 과제들과 학기마다 두 번씩 치러야하는 지필고사를 위해 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을 외우고 교과서를 외우고 유인물을 외우는데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지금껏 내가 대학에서 제공받은 교육에 대한 공부다. 물론 평가를 위한 공부가 아닌 공부를 위해 공부가 필요했던 강의들도 있었다. ‘들’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서양문명사>, <비판적 사고와 토론> 이 두 가지뿐이라 조금 민망하다. 이 두 강의는 내가 대학에서 받았던 교육 중에 가장 대학스러운(?)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평가를 위한 공부를 대학에서 쭉 해왔다. 사람들은 내게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냐고 묻는 대신 그 강의에서 얻은 점수를 더 궁금해 한다. 물론 그건 주변사람들 뿐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원하는 공부, 그리고 그 공부를 실제로 행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화가 많이 나는 게 사실이다. 아주 많이 화가 난다. 하지만 동시에 슬픈 건, 그러한 분노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내 스스로의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책에 나온 그대로 “무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분노를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조차 망설이는 무감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분노,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분노 하지만 그 분노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에 대한 슬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잘하면 좋은 학점을 받는다. 하지만 대학에서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하면 학점과는 대학을 떠날 때까지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오늘날 우리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바라는 공부를 잘하면 대학은 우리에게 좋은 학점을 매겨준다.
2. 대한민국에서 대학이 해야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또, 대한민국이(국가 전체 일 수도 있고, 국민 각자 일 수도 있음.) 대학에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한민국은 대학에게서 인재를 기대한다. 국가를 밝은 미래로 이끌 수 있는 참된 인재들을 원한다. 그 인재들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정확성을 갖춰야 하고 밝은 미래를 위해 날이 밝을 때까지 업무에 열중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겸비하며 국가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들이 세계무대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기업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 무게감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대학이 이러한 훌륭한 인재들을 생산해주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대한민국에게 해줘야할 일은 인재 생산에 대한 국가의 요구를 보이콧하는 것이다. 대학은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 소리는 대학 외부를 흔들기도 하겠지만 대학 내부의 학생들을 흔든다. 자신이 소속된 대학이라는 곳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대학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지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인식을 가진 주체들을 키워내고 사회로 내보내는 역할을 대학이 해내주어야만 한다. 제발 그렇게 해야 한다.
3. 당신은 대학교에 왜 진학했습니까? 그리고 계속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두가 대학에 가려고 했다. 대학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 조차 대학에 가야한다고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학진학은 마치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아서 진행되는 신체적 성장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이질감도, 거부감도 없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에 진학했다. 누구 한명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누구 하나도 대학이 현재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았다. 대학은 마치 의무교육에 포함된 교육과정 같았다.
내가 대학에 계속 다니는 이유는 아주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첫째, 현실적 판단.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은 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힘들게 살고 무시당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살고 결국 존엄하지 못한 인생을 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적 판단. 그러한 두려움 때문에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벌써 7학기 째 다녔다. 대학을 다니면서 등록금을 포함한 교통비, 책값, 기숙사비, 기타 부수적 비용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돈이 산정될 것이다. 이제 한 학기 밖에 남지 않은 나의 졸업을 포기하기엔 앞서 투자한 이 비용들이 너무나도 아깝다. 차라리 끝까지 대학을 마친 후 수여받은 학사학위를 이용해 어떻게든 취업을 해서 월급 받으면서 평생 사는 게(물론 이건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다)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직관 때문이다.
4.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에 대해 써주세요.
정확히 어떤 느낌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분노, 울화, 슬픔, 씁쓸함 등등. 첫 발제책이었던 마음사전을 펼쳐, 그 안에 적혀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의 이름들을 찾아봐야 할 정도로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묵직한 감정들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하고 화내고 슬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에세이는 다소 건조하고 힘이 많이 결여된 느낌이라서 나 스스로도 의외였고 많이 안타깝다. 읽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둘러싸고 해야할 말들이 산더미 같았는데 막상 토해내려고 하니까 어딘가 꽉 막힌 것 마냥 시원하게 쏟아내질 못한 것 같다. 심하게 체한 것처럼.
책이 너무나도 현실 그대로여서 아주 가끔씩 그 보다는 좀 자주, 내가 이 책을 들고 다니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게 조금은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속세를 살아가야 하는 작은 미물로서 내가 이 책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달까? 사회가 어떤 모습이건 좋건 나쁘건 어쨌든 나는 그것들을 순응하고 때론 눈 감고 살아 나가야할 사람인데 이 책이 훗날 나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을까 하는 그런 멍청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 책. 내가 과연 어떤 위치에서, 어느 지점에 서서 살아가야할지 심각한 고민을 안겨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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