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Yenny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알랭드보통)/wendly

Yenny_S2 2016. 5. 7. 23:31

[1] 여러분에게 있어 "종교"란 무엇입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이, 아마도 이 책을 읽은 후에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쩌면 생각이 변함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한 것도 좋고, 변하지 않은 것도 좋습니다. 변했다면 어떻게 변했는지, 또는 변하지 않았다면 변하지 않은 것 그대로,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알랭드 보통의 책이라 걱정했지만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술술 읽혔고 심지어 흥미롭다는 생각까지 미쳤다. 어렵기는 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하고 꺼내지 못한 생각들을 잘 정리한 느낌이랄까. 그의 말은 명쾌한 알맹이 같은 느낌이다.

기독교 신자들의 이기적인 강요와 부담스럽고 끈질긴 전도 방식에 제대로 질린 탓에 단어만으로도 내 얼굴과 몸은 거부감으로 꽁꽁 싸여진다. 나의 마음은 기독교라는 종교 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신비감도 앗아가 버린 듯하다. 그렇지만 난 힘들 때면 대상(對象) 없는 기도를 하면서 내겐 의미 없는 신을 찾는다. 신이 누구인지 무엇인지에 대해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신’이라는 단어 자체에 마음을 기댄다. 내게 신은 외할머니가 되기도 했었고 힘들 때, 또는 내게 소원이 있을 때 찾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가 없었다. 종교를 믿어볼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종종 있었지만 신의 존재여부에 따른 믿음을 떠나서 종교의 공동체적 생활 또는 그 집단의 교리 등이 나와 맞지 않는 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쉽게 옮길 수 없었다.

종교라는 것은 단순히 신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고 달갑지 않게 다가왔던 종교가 책을 통해 생각의 전환을 시도했다. 난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종교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왜 이 세 가지로만 나뉘고 인정되는지 생각했었다. "유레카"라고 외칠만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과는 달리 종교에 대한 나의 소신있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를 여러 군데를 따라 다니면서 보고 자란 기억이 지금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 할머니와 이모들이랑 종종 갔던 교회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기독교의 교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러 사이비종교는 아니다. 나는 그런 사이비 종교들처럼 인간의 재물을 탐하거나 도덕적 범주를 벗어나는 행위가 아니고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끼리 통해 치유 받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종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내게 종교란 이런 것이다.

 저자는 종교란 하늘나라에서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릴 때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일단 이 책은 기존의 나의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무교이지만 우리가 세속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종교 속에서 행하는 행위들-예를 들면, 홀에 모여 찬송가를 함께 부르는 행위, 이웃과 함게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는 행위 등-은 지극히 까다롭고도 취약한 우리의 사회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데에 도움이 되는 종류의 인식인 것이라는 말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또한 역할 모델을 이용하거나 신체활동을 통해 영적 교훈을 배우는 행위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행위들이 종교에 더 심취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

 

 

[2] 이 책은 종교가 가진 여가지 미덕과 제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에 두 개의 질문을 제시했습니다. [2-1]은 우리 모두가 답해야하고, [2-2]는 해당되는 분들만 답해주시면 됩니다.

[2-1] "가장 마음에 남는" 미덕과 제도는 무엇입니까? 또,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미덕과 제도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들이 왜 본인의 마음에 남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습니까?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고 마음에 남는 미덕과 제도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사랑하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에 유대교에서 거행하는 의식이다. (63쪽 공동체 부분) 자의적으로 목표 또는 원하는 바를 이루면 좋겠지만 어떨 때는 타의적인 힘이 나 자신을 세워줄 때가 있다. 유족에게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완전한 기회를 허락하는 한편, 결국은 자기 본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부드러운 압력을 계속해서 가하라는 것. 계획적이면서도 치밀한 이것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인정한다. 슬픔이 허락되고 기도를 통해 추모하며 다시 자기 삶과 공동체 모두의 요구에 다시 충실할 것을 확인한다. 종교를 버리지 않게 만드는 교주의 음모 같다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동시에 죽음의 슬픔을 종교를 통해 극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든다.

두 번째로는, 속죄의 날이다. (55쪽~61 공동체 부분) 속죄의 날의 이점으로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행위가 단순히 가해자나 피해자들 가운데 어느 한쪽의 주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곳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도록 이루어진다는 점이라 했다. 그러면서 속죄의 날이라는 처방은 상처를 일으킨 사건의 당사자들 양쪽 모두에게 위안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완전히 저버리고 크게 상처받은 사람은 이런 날이 두렵고 불편하기 그지없을 것 같다. ‘속죄의 날’이 나의 마음에 남았다고 해서 긍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란 말을 하고 싶다. 그냥 나에게 적용시키고 대입해 보았을 때 내 마음이 그렇다. 고통을 받고 가벼운 짜증스러운 일 따위는 우리의 이러한 나약함에서 벗어나주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원인’을 핑계 삼아 화해하기엔 나의 신앙심도 이해심도 너무나 부족하다.

 

[2-2] 책에 소개된 미덕과 제도 중 본인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 있습니까? 혹은, 본인의 생각 및 가치관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에 대해 적어주세요. 한 부분이 아니라 여러 부분들이라면, 모두 적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세운 지적 세계에서는, 가장 유명한 기관에서조차도 영혼에 관해서 가장 진지한 질문을 내놓은 일도 거의 없으며, 따라서 답변을 내놓은 일도 없다. 이런 상황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의 대학들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역사와 문학 같은 분야를 폐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분야는 매우 귀중한 재료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피상적인 범주일 뿐이고, 그 자체로서 우리의 영혼을 가장 괴롭히거나 매료시키는 테마를 추적하지 않기 때문이다. (133쪽 7번 본문 내용 중)

-역사와 문학 같은 분야를 폐지한다는 말을 꺼낼 수 있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2. 진정한 자유는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는 오히려 규제되고 인도되는 것을 당연히 전제로 해야 한다. (83쪽 본문 내용 중)

-역설법은 어렵다. 내게 물음표를 갖게 하는 문장이다. 규제되고 인도되는 것을 전제로 그 속에서 자유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3] 저자는 주장합니다. "현대인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는 기존 종교가 제시해온 해결책에 의해서 성공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종교가 제시해온 해결책이 우리로 하여금 성공적인 대처를 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신앙인들의 전유물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나을까요? '종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종교에 대한 생각을 이분법적인 사고가 들어나지 않게 쓰고 싶은데 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글을 쓰는데 오래걸렸다. 내겐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2번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움이 되는 제도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가르치는 교리와 ‘말씀’이라는 것도 종교 자체이다. ‘말씀’이라는 것을 깊게 들어가 보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지와 믿음의 가르침들이 나 자신을 붙잡을 수 있다는 구절과 말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난 이러한 말들이 더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깊게 들어가지 않고 종교가 행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들이 공동체 생활을 만들고 친절, 교육, 미술, 건축 등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배워 해결책으로 가능하다면 적용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앙인들의 전유물도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된다면 이것 또한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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