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Yenny

계속해보겠습니다/wendly

Yenny_S2 2016. 6. 26. 09:56

1. 당신의 이름 세 글자는 무슨 뜻을 갖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의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요, 혹은 그렇지 않나요? 이름 때문에 괴로웠거나 즐거웠던 적이 있나요? 당신의 이름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있었다면, 바꾸고 싶은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당신의 이름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엄예원. 엄할 엄, 예도 예, 근원 원. 성은 영월 엄으로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원. 예의를 근본으로 살라는 뜻 같은데 솔직히 나는 이름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 않았고 동생도 친척들도 돌림으로 예쁜 이름을 사용한 것 같다. 그냥 내 생각은 그렇다. 부모님에게서도 이름 자체로 나를 만들어 갔을 뿐 뜻을 진지하게 일러주시거나 깊은 뜻이 담겨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예원이라는 이름도 주변에 종종 찾아볼 수 있어 나의 이름에 애착이 가지 않는 것 같다, 갖지 않는 것 같다. 둘 다 맞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 웃기고 귀여운 얘기지만 초등학생 때는 성이 특이했기 때문에 메이플스토리에 나오는 독을 내뿜고 레벨이 제법 높은 엄티라는 캐릭터와 단지 이름이 같고 기운()도 쌨기 때문에 장난식으로 불리던 이름은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았고 화도 그리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학창시절 예쁜 한글 이름을 가진 친구들(예를 들면 사랑’, ‘한울과 같은)이 있으면 부럽다기보다는 정말 예쁜 이름이구나, 나의 자식이 훗날 생긴다면 이런 식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부모님의 뜻이 담긴 자신의 이름을 지어주어 자기소개를 할 때면 자신 있는 얼굴로 이름 석 자를 말하며 뜻을 설명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속은 아니었고 어쩌면 소라나나나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바꾸고 싶은 이름은 딱히 없다. 이것은 번호를 바꾼다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일지도 모르겠고 바꾸고 싶지도 않고 엄예원이라는 고유 명사가 된 것처럼 나라는 존재를 어쩌면 이름 속에 넣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도, 남이 생각하는 나도, 이름 속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식을 낳는다면 들었을 때 따뜻하고 한글 이름이 들어간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2. 우리가 직접 듣지 못한 모세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모세씨의 입장에서 소라 나나 나기 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지, 적어주세요. 꼭 모세씨의 입장에서 쓰는 편지 형식이 아니어도 되고, 모세씨는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와 같은 형태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어쩜 모두 약하고 비슷한 소라나나나기에게 모세씨는 너무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었는지 모르죠. 이런 모세씨의 입장을 우리도 함께 생각해보자구요.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어느 정도 비중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모세의 이야기는 없어 아쉬운 감이 있었다. 저절로 나나의 입장뿐만이 아닌 모세의 입장도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하고 말 수가 적어 말을 아끼는 모세 같은 사람은 고민이 생기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 표출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이다. 결국 그 답답한 마음이 나나의 목을 조르게 만드는데 기여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세와 나나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나의 생각이 꼬리를 물어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한 채 나나는 답을 내리고 만다. 단답식으로 말을 하는 모세에게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대상이라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미친 생각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세의 말처럼 아이는 아버지에게도 분명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색깔과 성격이 모두 다르듯 나나와 모세도 그렇게 아예 다른 사람이 아니었을까. 나나가 나기나 소라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고민을 하지만 정작 고민을 나눠야할 사람은 모세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나나가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책에서 약하다는 교활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교활하다의 끝에 이기적이다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모세씨가 단단하고 강해서 이질적이라고 느끼기 보다는 틀어지는 방향 속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모세씨가 안됐다고 생각한다.

 

 

3. 3번과 비슷한 질문입니다. 이번엔 애자입니다. 애자는, 금주씨가 죽은 그 날 이후 사람이었을까요? 애자는 소라와 나나에게 정말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애자에 대해 애자가 소라와 나나에게 무슨 말을 자꾸만 하려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주세요.

 

애자와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감정과 상황을 그려내며 추측할 뿐, 내가 상상하는 고통은 애자의 고통의 발톱 끝도 안 될 수도 있다. 그런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을 먹으면서 물아일체가 됐던 대화가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금술이 좋았던 부부는 같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정신과 영혼이 분리되어 그렇게 애자는 살았을 것 같다. 애자가 소라와 나나에게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려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4. 나나가 나기에게 토해내는 물음들(182)을 읽으며, 나나의 손을 꼭 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나에게 괜찮다고, 하찮은 위로는 건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세계라는 것을 살아가는 건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요. 나나는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아이가 받을 사회적 데미지, 혹은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는 우리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계속해보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의지의 표현이나 희망찬 다짐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약하디 약한 존재가 삶을 견뎌내는 마지노선일까요? 나나의 터져나오는 물음들, 나나가 반복해서 말하는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말에 대해 여러분이 느낀 것을 적어주세요. 그리고 나나가 던지는 물음들에도 답해주세요

 

나나가 겪는 힘든 상황 속에 이겨내려는 그래도 계속 해보겠다는, 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그런 목소리로 들렸다. 소라의 말과 나나의 말은 확연히 다르게 다가왔다. 소라편을 읽고 나나편을 읽어서 그런지 언니 소라보다는 약하면서도 눈물을 참고 좀처럼 울지 않으려 하고 강하면서도 한 번 터진 울음은 좀처럼 그칠 줄 모르는 약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나가 말하는 계속해보겠다는 의미는 잘 버티면서 앞으로도 계속해보겠다는 그런 표현으로 다가왔다. 나나가 던지는 물음들은 나에게도 참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를 향해 저절로 인상이 써진다. 당장 내 눈 앞에 닥친 현실을 마주하고 감당하기도 어려워 자꾸만 짐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나인데 이런 대답 하나 꺼내기 너무 어렵다. 모두가 부지런하게 고민들을 하고 결정은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맞을 것이다.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걱정이 앞섰고 그렇게 살다보니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졌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고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내가 하는 일이 모두 맞으니까 하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나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물음들의 답은 나 자신에게 있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고민하는 자체가 이미 딸과 나나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