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서를 마친 후 여운이 가시기 전에 우리의 감정을 남기고 정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1)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2) 다 읽고 난 후에,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까? 전반적인 감정도 좋고, 특정한 어느 부분에서 느낀 감정도 좋습니다.
이제껏 수북에서 다뤘던 책들 중에서 가장 흡인력있는 책이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은 단 한 번도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일기를 통해서 유진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유진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비춘다는 점 역시 이 책이 무엇을 다루고 싶어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고층아파트, 그 중에서도 꼭대기층 집이라는 한정된 장소, 한 사람의 관점만으로 뜨거우면서도 일순간 서늘해지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법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상황이 발현되기까지의 감정적, 경험적 기원을 플래쉬백의 형태로 표현해내면서 경직된 관점이 가질 수 있는 부작용을 상쇄하고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독자를 효과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메모 혹은 일기에서 일기의 표현방식이 너무나도 설명을 위한 것처럼 쓰여진 점은 많이 아쉬웠다. 유진의 입과 생각만으로는 완성하기 어려운 이야기의 퍼즐을 일기라는 장치로 완성시키려고 했던 걸까. 물론 장치로서 일기를 선택한 것은 주요했다. 그러나 작가는 사람들이 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적는지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거나(물론 고려했겠지만...) 퍼즐을 완성해야한다는 일종의 강박 때문에 일기가 지니는 속성을 과감히 포기한듯 느껴졌다. 심지어 큰아들과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그토록 괴로워했던 사람이 끔찍했던 날의 기록을 저렇게 상세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소설 속 유진은 어머니와 주황빛 우산의 여자를 죽였던 어제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의 기원>에서는 작가의 고뇌와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악에 대한 끊임없는 추적을 통해 만들어낸 인물이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계속해서 나아갈 때, 결국 모든 기대의 끈을 놓아버릴 때 느껴지는 쾌감과 허무, 분노는 이 책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2] 우리는 제3자의 시선과 유진의 시선 모두를 통해 유진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1) 당신이 본 유진은 어떤 사람입니까? (2) 유진 안에 자리한 '악'과 그것의 표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3) 당신이 본 유진의 주위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위 사람들에 대한 답은 한 명도 좋고, 모두도 좋습니다)
유진은 지극히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스스로가 벌였던 일들은 모두 납득할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이유와 원인에 입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주체성이 강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물론 그 이유와 원인이라는게 유진의 세계에서만 합의된 것들이긴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유진의 선택을 요하는 순간이 자주 등장한다. 그 때마다 유진은 스스로 결정하고자 노력한다. 특히 어머니와 이모에 의해 자신의 삶이 뒤틀렸다는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그 성향이 더 강해졌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외로움에 취야한듯한 느낌도 받았다. 스스로의 외로움이 무의식 속에서 튀어나와 직관적으로 느껴질 때 외로움이 일순간 분노로 바뀌는 것 같은, 사실 유진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유진의 주위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다. 유진을 사회의 일부로 귀속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유진은 어머니를 원망하고 증오했지만 유진의 어머니는 세상에 존재하는 평범하고 당연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아주 많이 늦은 뒤였지만 유진도 결국엔 어머니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모든 인물이 유진의 시선으로 설명되고 규정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주변인물을 정의하기 참 어렵다. 어떻게 해도 유진의 관점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
[3] 유진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는 그의 어머니도, 이모도, 그리고 해진도 없습니다. 유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 같습니까? 점화된 그의 악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마지막에 유진은 다시 한번 피냄새를 맡았다. 유진은 우산을 든 여자를 죽였을 때, 어머니를 죽였을 때, 해진과 이모를 죽였을 때.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을 뿐 유진은 그대로 유진이다. 모든게 파괴된 후에도 유진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이뤄내는 사람이다.
[4] 마지막으로, 당신은 '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본성이지 않을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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