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이유
처음과 시작은 설레고 긴장됩니다. 새 학기, 연애 초반... 처음 발제문을 써보고, 처음 책을 선정하고 소개하는 것에 설레고 긴장됩니다. 그래서 책을 본격적으로 읽던 시기로 돌아가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책 읽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발전시켜 나갔는지.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건 대학에 들어와서인듯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책 냄새를 맡는 것도 너무 좋고, 읽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친구, 선생님에게 추천받아 책을 읽기 시작한 덕분에 프랑스 문학을 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는 초창기, 제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가져다준 책이기에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선정했습니다.
책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극.
어느 한적한 시골 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언덕 밑에서 그들의 기다림은 아주 오래되어 이제는 고도가 누구인지, 기다리는 정소와 시간이 맞는지도 불분명하다. 두 사람은 이제 습관이 된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질문하기, 되받기, 욕하기, 운동하기, 장난하기, 춤추기...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쳐 갈 때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다.
작가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3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전공했고, 졸업 후 벨파스트에서 잠깐 교편 생활을 했다. 1928년에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강사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된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끝에 1937년에 파리에 정착했고,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종전까지 나치를 피해 은거,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다수의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다. 1953년 1월 파리에 있는 소극장 '테아트르 드 바빌론'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발제를 처음 해보는 것이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네요.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고, 따끔한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차영차 시작해 보겠습니다.
책은 잘 읽으셨나요? 부조리극(不條理劇, Absurdes Theater)은 195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극 유형 중 하나 이기도 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1900년대 초반 "모든 사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합리성의 한계를 알려주었습니다. 또한 두 번의 세계전쟁과 냉전을 겪으며, 진정 합리성과 이성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근대의 이성은 규칙, 규율, 권위 등을 의미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런 것들을 해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조리극은 반연극(反演劇, Antitheater)이라고도 불리는데, 기존 연극이 가지고 있던 서사, 시공간의 개념에 벗어나는 특징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것입니다. 실험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미 없는 대사의 반복은 마치 인생이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교훈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1]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극과는 다릅니다. 황당할 수도, 흥미로울 수도, 별생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든 생각을 알려주세요. 책에 대한 감상문이 되겠네요.
[2] 이 책의 등장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립니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그들은 왜 기다리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조차 잊어버린 듯합니다. '고도'를 만나면 그들 인생은 어떻게 바뀌는 걸까요? 대체 '고도'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기다리는 걸까요? 여러분 각자가 생각하는 '고도'는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기다림의 대상, '고도'는 무엇인가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자연스레 안 써주셔도 괜찮습니다.)
[3] 책장을 넘기면서 무언가 나오겠지, 진행되겠지, 반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마지막 장까지 허무하게 넘겨버렸습니다. 기다림은 두 주인공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었던 것일까요?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통받기 시작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죽는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가장 행복한 삶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무언가 나타나길 기대하고 기다리지만, 그 끝은 책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듯 생이 끝나는 죽음밖에 없으므로 깊게 생각하지 말고 '대충 살아라, 하고 싶은 말, 행동 다 하면서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나 수동적인 두 주인공과는 다르게 삶의 의미를 알아가기 위해 '고도'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둘 중 더 바람직한 삶은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책을 읽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제가 적은 두 가지와 다르게 생각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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