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이유
새해 첫 날에는 잠을 푹 잤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건 이 책이었다. 아니, 눈에 들어왔다는 말이 맞을까? 마음에 들어왔다는 말이 맞을까? 1년 전에 선물받은 이 책이 갑자기 새해 이튿날 아침 내 마음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꽂이에서 유독 이 책만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집어들었고, 여러가지 구색을 맞추어 '수북'의 첫 발제도서로 선정했다. 그러니까 책이 먼저, 그 책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나중이었다.
책
사람들이 늘상 번민하고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마음의 실체를 미묘한 차이로 구분하여 섬세하게 접근한다. 십 수년간 마음관련 낱말 하나하나에 밑줄을 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묘사한 저자는 이를 통해 마음경영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일반 언어가 갖고 있는 보편성을 없앤다.
작가
김소연
시인.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경주에서 목장집 큰딸로 태어났다. 천칭좌. B형.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동네에서 사람보다 소 등에 업혀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눈이 소를 닮아 고장 난 조리개처럼 느리게, 열고 닫힌다. 그 후 무덤의 도시를 떠나 서울로 이주했다. 줄곧 망원동에서 살았는데 우기 때마다 입은 비 피해가 어린 정신에 우울의 물때를 남겼다. 매일 지각하였다. 시에 밑줄을 치게 되다. 선생과 불화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었다. 마음과 몸이 분리되지 않고, 따라서 이 일 하며 동시에 저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한 모노 스타일 라이프를 갖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강건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은 하기도 전에 몸이 거부하는 이다. 실제로 그럴 땐 고열을 동반한 몸살에 시달릴 정도로, 몸과 마음의 완벽한 일원론적 합체를 이룬 변종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에 관해서는 초능력에 가까운 신기를 보인다. 고양이처럼 마음의 결을 쓰다듬느라 보내는 하루가 아깝지 않고, 도무지 아무데도 관심 없는 개처럼 멍하니 하루를 보내는 데 천재적이다. 밥은 그렇다 치고 잠조차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몇 밤을 그냥 잊기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스크림, 초콜릿, 커피를 주식처럼 복용한다. 게으르기 짝이 없고, 동시에 꼼꼼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래 글을 잘 읽고 질문에 답 해주세요. 본문 아래에 hwp파일을 첨부했으니 내려받아 작성하셔도 됩니다.*
저의 첫 발제는 이 글부터가 시작입니다. 이 글과 함께 책을 읽어주세요. 제가 묻는 질문들은 ‘논쟁할 만 한’ 거리를 만들어 내지 못할지도 모르고 또한 여러분들의 ‘옳은’ 답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새해 첫 책으로 <마음 사전>을 읽으며 우리 각자의 ‘마음’의 결을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저도 2주간 제 마음의 속도에 맞추어 이 책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첫 발제 <마음사전>은 진짜 나를 만날 시간, <인사이드 아웃> 수북 ver.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1] 마음의 결, 속도
「마음사전」
이해(p.182) + 솔직함과 정직함(p.200-201)
- 새해에 들어 통 잠들기가 힘들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던 어느 밤도 그랬다. 머리만 붙여도 잠을 잘 자던 내가 새벽까지 잠을 뒤척이다 결국 몸을 일으켜 책을 읽었던 날. 그 날 나는 밤을 꼬박 새워 이 책을 읽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구절마다 포스트잇을 붙이며 적극적으로 독서를 했지만, 해가 뜨니 내가 그저 활자를 들여다보고만 있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냥 누군가가 ‘이해’와 ‘오해’ 같은 헷갈리는 말들을 정의해주는 것을 읽고 싶었던 걸까? 시인이 ‘이해는 가장 잘한 오해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 끄덕 하고, 어느 술자리에 가서 ‘야~ 이해는 가장 잘한 오해래~ 김소연 시인이 어떤 책에서 그러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밤을 새워 책을 읽은 그 시간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졌다. 나는 정말 내 마음의 결을, 마음의 속도를 들여다보며 책을 읽었을까. 그것이 없는 책읽기는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답 없는 자문자답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 당신은 이 책을 읽을 때 당신 마음의 결을 따라 읽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마음의 결을 따라 읽는다는 게 뭔 소리야 싶다면 어떤 마음의 속도로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는지 적어주세요. 솔직해도 좋고 정직해도 좋습니다.
[2] 내려놓기
「마음사전」
감정<기분<느낌(p.43-47) + 유대감들(p.147-160)
-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는지 알게 되었으니 이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저는 작년 일주일에 한 번씩 세 달, 그니까 한 10회 정도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라는 이름의 집단 심리 상담을 받았습니다. 심리 상담은 참 좋았습니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한 시간 반 동안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가슴 답답한 걸 털어놓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의 진행이 좋았습니다. 상담의 처음은 ‘내려놓기’로 시작됩니다. 선생님이 ‘내려놓기부터 시작할까요?’라고 말씀하시면 모두가 눈치를 보다가 한 명씩, ‘내려놓기’를 시작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금 나의 ‘감정’을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하면 됩니다. 모두가 돌아가며 단어를 뱉어내면 다시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집니다. 선생님은 상담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가 서로서로 질문하길 원하셨으므로 먼저 용기 내어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그 침묵은 이어집니다. 긴 침묵 후에 누군가가 입을 떼면 우리는 ‘내가 왜 이 감정을 느끼는지.’가 아니라 ‘당신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가.’를 묻고 듣습니다. 그렇게 대화는 이어집니다. 대화 중간에서도 이 진행 방식은 이어집니다. A가 본인의 이야기를 어쩌고저쩌고 늘어놓으면 선생님은 A에게 바로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B에게 묻죠. ‘A씨의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들려요?’ 이런 방식은 저에게 조금 낯설었습니다. 내 상태가 이러하다고 말하면 무언가 답이나 아니면 그 비슷한 것이라도 주실 줄 알았던 저였기에 더욱 어색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서로가 서로의 거울의 비추어보며 꺼내놓았던 감정과 느낌과 기분들이 결국 진짜 내 모습을 여러 개 마주할 수 있게 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감정, 기분, 느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함께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함께 모여 앉아서는 아니지만 글로써 우리의 감정을 표현해보고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보면서 그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마주해 봅시다. ‘감정’,‘기분’,‘느낌’ 같은걸 구분하는 건 김소연 시인만 할 수 있는 일인지 몰라도, 우리 지금 내 ‘감정’이 무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016년 한 해를 또 힘겹게 살아가야 할 텐데, 지금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무엇을 하겠어요! 라고 다그치면 안 되겠죠... 하하 부담 갖지 말고 지금 당신의 ‘감정’을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해보세요. 형용사만 달면 됩니다. 하나, 더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다른 멤버의 글을 읽으세요. 그리고 그의 글에 댓글을 하나 이상 다세요. 왜 그런 감정을 갖고 있느냐 물어도 되고 , 나는 이런 기분일 때 이런 감정이라 했는데 비슷한 것이냐 물어도 되고.. 당신이 느낀 그 감정과 이 감정은 같다고 생각하느냐 물어도 되고... 자유입니다. 그 물음과 답변 속에서 여러분 서로가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합니다. 기쁠지 슬플지는 해봐야 알겠군요.
[3] 내 언어로 이야기하기
내 글에 '나'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게 된 것은 1992년, 내가 사십대로 들어설 무렵이다. 그전에는 '나'라는 말은 못쓰고 가끔 '필자'라는 말을 쓰기는 했다. 영어 글을 보면 수필이나 칼럼 뿐 아니라 학술저술에서조차 수많은 'I'(나)가 나오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다고 할까 또는 거부감이 있었다고 할까. 그런데 9209호에 건축 잡지 공간에서 "부상하는 한국의 아티스트 40"라는 특집을 꾸미면서 10개의 설문에 답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쓸까 말까 망설이다 컴퓨터 앞에서 단번에 답변을 내려썼다. '나'라는 주어 없이는 답변이 될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쓰고 나서 그대로 보내 버렸다. 이 사건은 나에게 새로운 계기였다. 글에 '나'라는 단어를 쓰게 됨으로써 나를 찾는 또 다른 방식을 터득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나'라는 주어가 들어간 글을 한 번 써보라고.
「매일 매일 자라기」 김진애,서울포럼,p.167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현실을 반성하지 못하고 언제나 남의 언어로, 남의 세계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정신의 역사가 바로 한국의 정신사이다. 정치적 예속이란 이런 정신적 자기상실의 외화인 것이다. 그런즉 철학이 할 일은 정신이 예속의 상태를 벗어나 자기를 찾고 주체성을 회복하도록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직 자기의 언어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을 때 참된 의미에서 자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언제 우리는 자기가 되는가' 라는 물음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제출된 물음이다.
「서로 주체성의 이념」 김상봉,도서출판 길,p.29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 받을 테니까.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 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연금술사」,파울로코엘료,문학동네
만약 마음이라는 것이 나아가는 것이 아닌,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라면.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고. 파랑새를 보고, 다시 잊고. 실수하고, 반성하고, 포기하고, 노력하고, 무뎌지고, 다시 아프고, 트램펄린 위에서 점프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올라갔다 떨어지고, 아니 떨어진 덕에 다시 올라가고.
그러다 중력에서 벗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만나고, 다시 끌려 내려가고, 또 다시 점프하는 세계라면, 그렇다면 진짜 아름다움은 위에서 잠시 본 높은 풍경이 아닌 그 움직임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후일담을 듣고 싶었다.
프로필에 좋아하는 것을 적어둔 사람을 많이 본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나열하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부질없다고 느낀다. 어차피 변할 것을. 차라리 내 침대 커버의 색을 써두는 것이 진실에 가까우리라.(현재 파랑이다.)
나는 나를 통제할 수 없다. 무엇을 좋아하고 말고조차 어찌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추억조차 마음대로 떠올릴 수 없다. 어떤 선반은 열리지 않고 어떤 선반은 너무 열려 안에 있던 것들이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나는 이제 기억을 믿지 않는다.
이런 흐름이 있구나. 점점 지하로만 내려가는 계단. 부정적으로 바뀌는 세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 안 되는 것. 무기력한 것.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것이 아닌. 계속 잃기만 하는 세계.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냥 하면 되잖아’라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이봄,p.98,105
- 이제 더 이상 저는 주절거리지 않으려구요. 여기부터 여러분들. ‘나’의 언어로 이야기해야합니다. 위의 글을 읽고 떠오르는 말들을 적으세요. 분량제한을 조금만 할게요. 공백을 포함해 300자에서 600자 사이로 적어주세요.
- 우리는 <마음사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김소연 시인이 했듯 내 입에서 나온 마음 관련 낱말 하나하나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며 말해봅시다.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의 마지막 ‘틈’ 페이지에 나온 여러 마음 관련 낱말 중 하나여도 좋고, ‘나’의 마음에서 오롯이 건져 올린 낱말이어도 좋습니다. 최소 다섯 개의 낱말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아주세요. 금방 변해버릴지도 모르는 나지만, 2016년 1월, 나의 마음을 사전으로 남겨두는 작업은 결코 헛된 일은 아닐 거라 믿어요. 그럼 다들 파이팅.
끝.
'발제도서 > 첫 번째 수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5월 책과 짐꾼 (0) | 2016.03.20 |
---|---|
몸의 일기/다니엘 페나크(ahsang) (3) | 2016.02.28 |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bokiree) (2) | 2016.02.14 |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김영란(wendly) (4) | 2016.02.03 |
1월-3월 책과 짐꾼 (0) | 2016.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