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theora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 패배한다

theora 2021. 11. 19. 19:18

책에 대한 기본 정보를 거의 알지 못한 채로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처음 블루의 편지가 등장했을 때 이 책의 구성이 두 명의 편지글로 쭉 이어진다고 상상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레드의 편지가 다시 등장하고, 또 블루의 편지가 등장하며 처음 주고받던 초반에 나름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의 시간을 초월한 편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블루가 속한 진영(가든)과 레드가 속한 진영(에이전시)가 시간 타래(시간 가닥?)을 넘나들며 긴긴 싸움을 하고 있고, 어쩐지 이 싸움에 지친 양 진영의 에이스 전사가 온갖 서양 문화를 죄다 인용한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고, 한 쪽이 죽게 되는 뭐 그런 이야기. 플롯은 정말 단순한데, 형식과 박식한 인용이 특징으로 보였다. 각주가 너무 많아서 읽다가 중간에 지쳐서 살짝 건너뛰어 뒤로 갔더니 전개가 좀 되면서 마지막은 나름 끄덕끄덕하게 되기도 했다.

 

중간에 칭기즈칸이랑 별을 봤다는 이야기나, 소크라테스와 친구였다는 이야기 등등을 편지에서 하는 걸 보면서 공감이 참 안되어서 더 몰입이 안되었던 것 같기도. 우리 나라 이야기로..삼국 시대와 조선 시대, 대한 제국과 지금 21세기를 넘나드는 시간 타래 싸움 이야기였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막판에는 들었다ㅋㅋㅋ. 어쩌면 단순한 플롯을 지탱해주는 건 영미권에서 기본 바탕으로 두고 있는 문화적 자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책은 문장들이 너무 장황하고 느끼해서 딱히 맘에 드는 구절은 없었는데, 오히려 감사의 말의 마지막 문장이 좋았다. 6주 만에 이런 소설 한 편을 뚝딱 써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지만, 어쨌든 마음에 와닿은 문장이었다.

 

"멈추지 말고 읽으세요. 멈추지 말고 쓰세요. 멈추지 말고 싸우세요. 우리 모두 여기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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