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theora

종의 기원

theora 2016. 7. 23. 15:50

[1] 독서를 마친 후 여운이 가시기 전에 우리의 감정을 남기고 정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1)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2) 다 읽고 난 후에,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까? 전반적인 감정도 좋고, 특정한 어느 부분에서 느낀 감정도 좋습니다.

 

 처음 1부를 읽으면서, 사실 조금 읽기 싫다는 생각도 했다. 세세한 주변묘사가 내 목을 조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 음침한 내용이 너무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해서. 다 읽고난 후엔, 뭔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맘이 착잡 하고 찝찝하기도한데 후련하기도하고.. 분명 처음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꼈다. 유진이 계속 살아가는 이 세상에 나도 함께있다는 생각에 끔찍하기도한데, 그를 옭아매던 모두가 사라진 그 세계에서 살아갈 유진의 모습에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다.


 

[2] 우리는 제3자의 시선과 유진의 시선 모두를 통해 유진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1) 당신이 본 유진은 어떤 사람입니까? (2) 유진 안에 자리한 '악'과 그것의 표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고 (3) 당신이 본 유진의 주위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위 사람들에 대한 답은 한 명도 좋고, 모두도 좋습니다) 

 

 유진의 병력 및 여러가지 사연들이 밝혀지기 전부터 유진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 저런 행동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처음 잠에서 깨어 죽어있는 엄마를 보았을 때의 그의 행동들. 자신이 죽였음이 명확히 밝혀지기 전에 시체를 치우기 위위한 치밀하고도 교묘한 작업들이 너무 생소했다. 나라면,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절대 저렇게 행동하지 못했을텐데. 그래서 분명 유진은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다. 유진은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고통을 즐거워했다. 잔인한 영화를 보며 웃음을 짓는 것도, 형을 죽이고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그가 다른 이의 고통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게 타인에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게 정말 '악'일까? 우리는 유진을 악한 인물이라고, 악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유진에게 있어 그의 행동은 '악'이 아니다. 악함으로부터 나와 그런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유진은 그저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충족시키기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 어떤 물질적 이익이나 사회적 명예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유진에게는 자신의 본성이 이끄는 즐거움과 쾌락, 그것만을 원할 뿐이다. 문제는 유진이 악을 표출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가 유진의 행동을 '악'으로 규정짓느냐 마느냐이다.  

  유진의 표현에 따르면 혜원은 지원을 겁주고, 들쑤시고, 어르고, 뺨을 쳐서 유진을 망가뜨리게 만든 장작개비였다. 혜원과 지원은 '한유진'이라는 인물을 의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정해져있는 기준에 맞춰 보았다. 유진을 '악'의 화신 그 비슷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들 마음대로 짓눌렀다. 

 

 

[3] 유진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는 그의 어머니도, 이모도, 그리고 해진도 없습니다. 유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 같습니까? 점화된 그의 악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소설의 마지막 한 줄은, 그가 계속해온 그의 놀이를 이어나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는 그가 해온 타인의 고통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그 놀이를 계속해나갈까? 누군가에 의해 붙잡히기 전까지? 치밀하고 머리가 비상한 그는 아마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인물이 될 것이다. 그를 옭아매는 약도 혜원과 지원도 없으며 그가 유일하게 감정적으로 소통하던 해진마저 없는 세상 속에서, 그는 온전히 자기 자신이 가진 능력과 타고남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어느 날, 사람들이 '악'이라 부르는 어떤 일들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치밀하게 숨을 것이다. 그가 '악'으로서 세상에 드러나는 날은, 그가 원한 날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날. 그래서 자기 자신을 모두 드러내고 싶은 날. 그 날은 아마 그가 이 세상에 모든 즐거움을 알고난 후가 아닐까? 그 어떤 미련도 없는 날? 그 날이 오면 그는 자신의 모든 악을 드러내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당신은 '악'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질문에 다 답을 하고나서 생각하니 왠지 나는 한유진이라는 인물과 동일해진 듯 하다. 한유진을 옹호하고 있고, 한유진이 하는 행동은 '악'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악마에 홀린 것인가. 악마에 홀린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한유진이 가진 그 본성은 '악'이 아니라 그저 다른 즐거움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진짜 악이 무언가 생각하면, 그것은 어떤 즐거움이 아닐 것이라고. 아마 이런 생각은 그가 누군가를 '죽이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죽음은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악함'을 '죽임을 행함'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죽임을 행하는 것은 '악'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악'인가. 한유진은 악인이 아닌가? 왜 나는 한유진에게 자꾸만 애정어린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건 나와 그가 비슷하다고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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