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7편의 수록작 중 나만의 대상은 어떤 작품인가요? 대상으로 뽑은 이유도 궁금해요.
한정현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원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망한 사랑 이야기면 더 좋아하거든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이렇게 돼주었으면 하는 것은 아니야."
"사랑 때문에 망하는 게 뭐 어때요?"
탐정 소설을 쓰는 남자들은 연애소설을 읽는 여학생들을 무시했지만 경준은 그렇게 말했다. 돈과 권력 때문에 망하는 사내보다 낫지 않나요, 라는 말과 함께. 안나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는 채 그저 앞으로 걷기만 하는 경준의 손을 꼭 쥐었다.
"그이도 너도 모두 강한 사람들이야."
언제나 변하지 않고 반복되기만 하던 소설 속 과학 소년들보다 삶을 위해 뛰어든 소녀들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실 그건 선영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선영은 이혼을 하면 세상이 모두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 전생 연인, 현생 친구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네 명의 서사가 겹쳐 보이면서 이 소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어졌습니다.
조선 말기와 미국 이민자로서의 현재가 겹쳐 그려지는 구성도 신선했고요.
언젠가 한 대담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 소설은 현실에 대한 모사가 아닌 가능성에 대한 탐구이며 존중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 방식대로의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의 삶을 내 소설의 한가운데로 데려오고 싶었고, 내가 탐구하는 가능성을 강인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 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더이상 악한 인간들을 이해하는 데 내 뇌와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거니와, 나는 선한 강인함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세상을 낙관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을 읽고 이 소설이 더 좋아졌는데, '소설은 현실에 대한 모사가 아닌 가능성의 탐구이며 존중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 방식대로의 기록'이라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현실에 대한 관찰의 결과'라는 이름 아래에 혐오나 대상화를 전시하는 작품들을 싫어하는 편이라, 이 소설이 더 반가웠어요. 저도 '더이상 악한 인간들을 이해하는 데 내 뇌'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1-2. 반대로 별로였던 작품도 있다면 기탄없이 이야기해봐요.
특별히 별로였던 작품은 없었고, <나뭇잎이 마르고>는 주제가 크게 공감되지는 않아서 많이 와닿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1-3. 1-1과 1-2에서 언급되지 않은 작품들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꺼내주세요. 혹은 이 수상작품집 전반에 대한 생각도 좋아요.
서이제 <0%를 향하여>와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도 정말 좋았어요.
서이제 <0%를 향하여>는 거의 국내 영화관을 모두 다룰 기세로 뻗어나가는 전개가 좋았고,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도 많이 되었던 작품이었어요.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제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는데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엄마 그 게임 잘해. 엄마가 경현이보다 잘할 걸. 회장 걸고 하자고 해. 엄마가 대신 이겨줄게.
이미 엄마는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어쩐지 통쾌해졌어요. 물론 결말은 절망스러웠지만.
2. 젠더가 강조된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지만, 어찌 됐든 모든 작품의 주인공은 여성입니다. (세 번째 수북에서 읽은 책들도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었네요.) "우리 소설이 여성의 서사를 발굴하고 재현하는 속도는 실로 놀라운 데가 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이 그 흐름을 앞당기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신수정의 심사평 중) 이처럼 여성의 서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예컨대 수상작품집에 여성의 서사만 실려 있는 이런 조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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